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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10월 25일 오늘은 독도의 날

by 지금이 가장 좋은 때 2023.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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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법정공휴일은 아니지만, 독도의 날입니다. 
초등학교 때 노래를 통해서 이미 배우셨겠지만, 독도의 지리와 생태계에 대해서 알아보고,
독도가 우리 땅인 역사적 근거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되새겨 보고자 합니다. 
 

독도의 지리

독도는 한 개의 섬처럼 보이지만, 실은 총 91개의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암초입니다. 
서양에서는 1849년 독도를 발견한 프랑스 선박 '리앙쿠르 호'의 이름을 따서 '리앙쿠르 암초'라고 부릅니다. 
최근 제3국에서는 한일 간의 영토 분쟁에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고자 리앙쿠르 암초라는 명칭을 주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독도는 약 460~250만 년 전에 형성된, 평균 수심 2,000m의 해양 평원에 솟아 있는 화산섬입니다.
독도의 91개 섬들 중에서 동도(東島)와 서도(西島)가 가장 큰 섬인데, 사실 이 둘은 별도의 섬이 아니라 해저에서 솟아있는 봉우리들 중 가장 높은 부분이며, 부속 섬들은 대부분 10m 미만의 얕은 땅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서도와 동도의 해저 단면도
(이미지출처-네이버 지식백과)


독도의 동도는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릉도에서 약 87.4km 떨어져 있고, 일본 오키 제도에서는 약 157.5km 떨어져 있습니다. 날씨가 좋으면 울릉도에서 육안으로 동도를 볼 수 있지만, 오키섬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지리적인 인접성으로도 독도는 우리 땅임이 증명되는 셈입니다. 
 

독도의 생태계

 
1. 천연기념물

독도 주변에는 다양한 해양생물이 서식하고 있어서, 독도의 자연환경을 보존하기 위해서 이 섬 자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였습니다. 

독도 사철나무
(독도 사철나무)


독도 사철나무는 동도의 천장굴 급경사 지역 끝부분에서 자라고 있으며, 열악한 조건에서 100년 이상 생존하며 영토를 지켜왔다는 상징적 가치가 커서, 2012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습니다. 

 

2. 그 밖의 동, 식물

독도가 섬인 만큼 철새들의 쉼터가 되고 있으며, 126종, 7천여 마리의 조류가 살고 있습니다. (2005~2006년 조사 결과)
독도 주변은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지역으로 물고기의 먹이가 되는 플랑크톤이 풍부하여, 총 169종의 해양생물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독도새우는 사실 도화새우, 물렁가시붉은새우, 가시배새우를 통틀어 일컫는 말입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독도에서 발견된 신종 박테리아는 38종에 달해서, 2005~2008년까지 대한민국이 3년 연속으로 신종 세균 발표 건수 1위를 기록했습니다.  

(독도에 사는 새들.위에서 부터 시계방향으로 바다제비, 괭이 갈맹이, 슴새)


천연자원
 

독도 해저에는 '불타는 얼음'으로 불리는 '메탄 하이드레이트(고체 천연가스)'가 약 6억 톤, 가치로는 150조 원 정도 매장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메탄 하이드레이트는 녹는 과정에서 물과 메탄가스를 발생시켜, 미래 청정에너지자원으로 주목받고 있는 자원입니다. 

 
독도가 우리 땅인 역사적 근거
 

1. 삼국시대
서기 512년 신라의 이사부가 울릉도를 중심으로 한 독도를 정벌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등장합니다. 
독도를 포함한 우산국은 신라의 일부라기 보단 신라에 공물을 바치는 복속 국가였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2. 고려시대
서기 930년 우산국이 고려의 태조 왕건에게 토산물을 바쳤고, 태조가 공물을 바치러 온 이들에게 벼슬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고려 현종 때에는 우산국이 여진족의 침략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어 농사를 지을 수가 없었다는 기록이 있고, 이에 현종은 농기구를 제공하고 피난 나온 우산국 백성들에게 식량을 제공했다고 합니다. 
고려사 지리지에 따르면, 울릉도는 고려의 행정구역에 편입된 섬이었으나, 울릉도에 대한 관리와 행정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못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또 고려 후기에는 울릉도가 유배지로 이용됐다는 기록을 볼 때, 이때에 이르러서는 울릉도가 고려의 지방행정체계에 확실히 포함돼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조선시대 
1432년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우산과 무릉 두 섬은 날씨가 맑은 날 서로 바라볼 수 있다'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왕조의 왕권이 약화된 틈을 타서 일본인들은 울릉도, 독도 등지에서 물고기를 잡거나 나무를 베어가기 시작했습니다. 
1613년 조선 조정에서는 대마도주에게 공문을 보내 일본인의 울릉도 왕래를 금지시키도록 요청했으나, 일본인들은 여전히 울릉도, 독도를 침범했습니다. 
급기야 1693년 숙종 19년에 안용복, 박어둔 등의 어부 40여 명이 울릉도에서 일본 어부들과 충돌하게 되었는데, 이후 약 6년 간에 걸쳐 양국 간에 울릉도, 독도의 영유권을 놓고 논쟁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역사서와 안용복의 증언을 근거로 한, 조선 조정의 강력한 대응으로 다시는 울릉도 등지에 왕래하지 않겠다는 일본 막부의 약속을 받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이 중요한 이유는,  첫째 이미 17세기말에 독도가 울릉도의 부속도서이며, 이 두 섬이 조선의 땅이라는 점을 양국의 최고 통치기구에서 분명히 명시하였다는 것과 이 당시에 일반 백성들조차도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둘째, 이 사건은 한국, 일본 양국의 영토의식에 끼친 영향이 커서, 조선은 울릉도·독도에 대한 순찰을 강화했고, 일본도 울릉도·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인정하게 됐다는 점입니다.

 

독도가 어느 나라의 영토냐 하는 문제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역사적 사실이나, 막대한 가치를 지닌 천연자원을 탐내고 있는 일본에 의해 소모적인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 관광객의 증가로 독도의 환경오염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는 뉴스를 보면서, 진정으로 독도를 사랑하는  자세는 어떤 것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